2011년 3월 31일 목요일

linux] some error

 
/etc/hosts의 host명과 /etc/hostname의 host명이 틀릴때 나오는 메세지

linux] kscope tips

소스 인사이트 쓰다가 KScope 쓰니 힘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툴은 툴 일뿐.

CScope 단축키는 메뉴에 나와 있다. ^1 ^2 ^3... 그 외 다른 것들도 메뉴에서 찾으면 있음.

^B : bookmark 찾아가기 mailto:%5E@G

^D : 주석으로 만들어 준다.

^E : external editor 띄워줌 setting - configure KScope - Options에서 선택가능
 gvim 으로 바꿀 때는 gvim +%L %F 하면 해당 라인에서 파일을 열어준다.

^Q : exit

보조창 열기/닫기 ^ + . or / or " <- 창 위치에 맞게 배치함

F11 line number를 보여줌.

이정도면 나름 쓸만함.

구글링 Tip

200..205 하면 200 201 202 203 204 205 찾아준다.

.. 좋다.

life] 자아비판

왔음. 공감가는 점도 많다.

난 욕 안 먹게 반성해야지.

 

뉴스따라잡기

 랏츠
2010-01-26 09:45:27.0
개발자 무시하는 삼송은 아이폰에 발리고...
어떤 기사의 내용 일부를 발췌~
"스마트폰도 하드웨어만 잘 만들어 물량을 퍼부어대면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판단인 듯하다.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얼마 전 미국의 전자제품 관련 사이트에 '삼성 옴니아2의 하드웨어는 괜찮은데, 소프트웨어는 끔찍하다(terrible)'는 리뷰가 실렸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본 개념(槪念)이 없고,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서 했다는 식의 신랄한 비판이었다."

삼송넘들 개발자는 맨날 외주기업에서 불러다 쓰고,
개발은 앞으로 짱깨 인도카레가 다 해결할거라 믿고 있는 이상한 넘들.
관리자만 있으면 된다는 이상한 개념을 가지고 있고, 개발자를 무슨 공돌이쯤
정도로 여기는 것들...결국 기술자는 거의 없고,
관리자만 넘쳐나는 기업이 될 것인가.
기술없는 성장이 보이는구나... 그래 변호사나 신나게 정직으로 뽑아라 이것들아.
    rcnboysrcnboys
    • 2010-01-26 09:54:00
    • x
    • 제조업 마인드라 그리 살다 망하겠죠...
    • eww1212아하항
    • 2010-01-26 09:59:32
    • x
    • 갑자기 울화통이 터지네요. 2
    • inyhan흰둥이
    • 2010-01-26 10: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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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조업 마인드에 공감이 가네요..ㅠㅠ
    • byurynet개고기
    • 2010-01-26 10: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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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에서 모바일쪽 개발하는거 옆에서 볼 기회가 있어서 유심히 봤습니다. 모바일쪽이나 SI쪽이나 관리 허술하게 진행하는건 매 한가지더군요. 이래가지구 서야 어떻게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들을 따라가겠습니까?~

      바뀌지 않고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희망은 보이지 않을듯~
    • ncrashncrash
    • 2010-01-26 10:43:54
    • x
    • 음... 아마도 모바일 OS는 안드로이드나 윈도우 모바일로 가겠죠..

      바다? 그런거 만든다고 누가 사주겠습니까?

      삼성 직원과 가족들은 사겠지만...
    • inyhan흰둥이
    • 2010-01-26 10:53:18
    • x
    • 사실 제조업도 전문 컨설팅 업체가 있습니다. 진짜 제조업 마인드는 나쁜게 아니라..
      제조업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그곳이 이상한거죠. 제조업 자체도 죄다~ 획일화 해서 자신들 것으로 만들어버리니까 문제지..제조업 마인드가 왜 나쁘다는건지 잘 모르것지만. 제조업쪽 기술자들은 하루하루 빡쎈 하루를 살고 있더난거
    • paradozz짱구의 친구
    • 2010-01-26 10:58:43
    • x
    • 흠...삼성sds랑 같이일했는데 역시나 관리자뿐이고 개발자는 노가다꾼부리듯이 일 빨리 해놓으라는 잔소리만...개선의 여지가 보이지않는데요...
    • sepiroth11초보개발
    • 2010-01-26 12:52:07
    • x
    • 삼성SDS에 개발자들은 있습니다. 진짜 개발자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진짜 개발자들은 관리자에 의해서 개발이 아닌 관리로 전향하는 케이스가 많아서 그렇지. 실력있는 개발자들 몇명있어요~~ 그리고 관리적인 프로세스도.. 부서마다 틀립니다. 개발자들 잘 관리하는 부서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부서가 많고, 그것이 삼성을 평가하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진짜 관리 잘 하는 부서들은 마인드없고 개발자들 노가다꾼부리듯하는 부서들때문에 대외적으로 욕먹고 있는 것이죠. 머 별수있겠습니까? 대삼성인이라고 외치는데.

      근로자 노동법도 무시되는게 삼성입니다. 자신들은 모를것같군요. PS PI로 평생을 빡쎈 노무 대신 위안을 준다는 제도를..
    • paradozz짱구의 친구
    • 2010-01-26 13: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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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조업 마인드에 공감요.
    • comthief검린
    • 2010-01-26 14:38:07
    • x
    •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한마디 합니다. 검린이 신고다니는 신발이나, 컴퓨터도 또 님의 블로그에 글을 올릴 컴퓨터도 사용을 못해요. 어째 이렇게 보는 눈이 얕은지.
    • 겉주의
    • 2010-01-26 19:23:15
    • x
    • MOVED FROM bbs6
    • kenukenu
    • 2010-01-26 23:18:54
    • x
    • 어?? 삼숑이 내놓았잖아용??? ===> 바다..??? 뭐징???!!!
    • macppc아스키
    • 2010-01-29 01:55:35
    • x
    • 혹 제조업과 비유가 되어 맘상하신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리자면..

      이쪽은 사람이 아주 많이다고 빨리 일이 끝난다던가(단순 업무 제외)
      오래 일한다고 해서 빨리 일처리가 되는 부분이 아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생산되는 제품이야 사람이 많이 있고 잔업을 많이 하면 그만큼 생산량이 많이 증가
      하지만..

      이쪽 분야는 100시간 해서 생산성 100이 나온다면 상황에 따라서 1000시간을 해도

      생산성이 10도 안나올 경우의 수가 많이 존재 하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생산성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 sudal크르릉
    • 2010-02-04 18:35:48
    • x
    • 야근비나 법대로 주면 좋은데...
      ..
      하긴 삼성이 법을 지킬리가 없지

    trace32] tips

    스크립트 분석 스크랩해야 겠다. 스크립트는 많은데 단계별로 보려고 한다.

      B::

     TOOLBAR ON - 툴바가 켜진다.
     STATUSBAR ON - 제일 아래 statusbar가 켜진다.
     WINPAGE.RESET - 윈도 다 없앤다. 얘랑 winclear랑 차이점을 모르겠다. winclear가 더 직관적인 명령어.

     WINCLEAR - cmm 초기에는 항상 써주고 시작하는 것도...
     WINPAGE.SELECT P000     모른다.

     ENDD

    ---------------------------------- t32 폴더의 mywin ----------------------------------------

    // T32 Tue Jun 29 12:41:42 2004

     B::

     TOOLBAR ON
     STATUSBAR ON
     WINPAGE.RESET

     WINCLEAR
     WINPOS 63.5 1.75 50. 20. 0. 0. LOG_WIN NORMAL "CMM Log Window"
    ; WINPOS 가로 세로 width height(line수) 모름 모름 로그윈지정 일반창/맥스창/?? 로그창 윈도우 이름
     area
    ; area에서 비로소 로그 윈도우가 켜진다.
    ; register 해도 CMM Log Window 란 제목의 창이 뜬다.
    ; 뒤에 나올 윈도우 전체 속성 지정인듯....

     WINPOS 89.625 0.125 48. 24. 0. 0. W002
     register /spotlight

     WINPOS 0.0 32.625 87. 7. 0. 0. W003
     area

     WINPOS 89.75 27.063 50. 11. 5. 0. W001
     Var.Frame /Locals /Caller

     WINPOS 0.0 0.0 87. 29. 13. 1. W000
     WINTABS 10. 10. 25. 62.
     data.list

     WINPOS 102.5 0.6875 20. 2. 13. 1. W006
     d.dump 0x50200000 /w

     WINPOS 98.875 6.0625 26. 2. 13. 1. W007
     d.dump 0x502001ba /w

     WINPOS 76.375 12.875 47. 3. 13. 1. W005
     d.dump 0x50400cf8 /w

     WINPAGE.SELECT P000    
    ;기본 페이지 인듯

     ENDDO

    -------------------------------------------------------------------------
    WINPAGE.RESET
    WINPAGE.CREATE P000
    를 보면(설명서에서 찾음)
    P000 페이지를 생성한다. 하나의 페이지는 자바의 패널과 같아서 여러 윈도우를 그 위에 올릴 수 있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리눅스 데스크탑에서 윈도우 workspace를 4개로 나누어서 쓰고 있는데 그것과 같다고 할까...
    img1.gif
    기능을 이용하고 winpage까지 이용한다면 창을 좀 더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끗- // 왜 끝보다 끗이 땡기는지 모르겠다.


    android] logcat 로그 뜨는 법.

    cmd 창을 두개를 뛰워서

    하나는
    adb logcat -b radio -v time > x_radio_attach.txt

    다른 하나는.
    adb logcat -v time > x_attach.txt

    요렇게 하면 radio, main 두개의 로그를 나눠서 뜰 수 있다.

    정지는 Ctrl+C

    book]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서 진 규 [美하버드대 박사과정]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가 겪었던 것처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도와주고 싶습니다.

    The worst thing in the world is to live
    without opportunity or hope.
    I want to help others who are trapped by societal prejudice
    or their own lack of self-determination, as I once was.

    나도 희망과 열정의 증거가 될 것이다. 





     [ 서진규 이력 ]
    ○ 1948년 생
    ○ 1967년 충문여고 졸
    ○ 1967년 가발공장 직공
    ○ 1971년 미국으로 가정부 취업 이민
    ○ 1972년 美 버루크대학 입학
    ○ 1976년 美육군 입대(일등병)
    ○ 1977년 한국 용산으로 발령
    ○ 1981년 소위 임관
    ○ 1982년 독일 병참중대 소대장
    ○ 1984년 駐韓 미군 사령부 유류담당 작전참모
    ○ 1985∼1986년 駐韓 미군 유류중대 중대장, 美 메리랜드대 졸
    ○ 1987년 美 노쓰캐롤라이나 포트 그래그 병참대대 운영과장
    ○ 1990년 美 캘리포니아 국방언어학교 일본어과정 졸
    ○ 1993∼1996년 駐日 美 육군사령부 정치·군사 고문
    ○ 1996년 소령 예편
    ○ 1997년 美하버드대 대학원 박사과정(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 언어과)

    <著>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중략...(서론부분생략)

    3. 자전에세이집을 내면서

     가. 마음의 힘
     지난 5월 9일 방영된 ''KBS 일요 스페셜 :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현실과 그 속의 자신들을 알게 되었고, 미래를 향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출간된 나의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출간 후 2∼3주일이 지나기 전에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고, 역시 남녀노소를 막론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성공비결에서 자신들의 성공 가능성을 보았다고 전해왔다. 모두들 희망과 용기를, 또 미래의 성취를 향한 자신이 생겼다고들 한다. 책을 잃은 많은 독자들이 나를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나는 그 책을 통해서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데는 선택이 없다. 우리 모두가 한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는 기회는 모두에게 단 한 번 밖에 주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번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고 가느냐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에 달렸고,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할 일''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나.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나는 50년을 살면서 한 번에 꼭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사실 내 나이는 백살 정도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다시 50년을 살았다. 집필하는 동안 혼자 울고, 혼자 화내고, 혼자 웃고, 삶을 다시 살았다. 아, 나의 50년!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어려움이 있었던 50년이기에 나는 지금 참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인생 철학은 본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을 본인의 선으로 쓰여져야 하며, 작가를 통해서 쓰면 그 철학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책을 집필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다음은 책의 서문이다.

     "이 책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 동안 내 안에서 다져온 내 자신과의 약속들 가운데 하나가 결실을 맺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희망과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에 언젠가는 내가 살아온 얘기를 쓰리라 다짐해 왔다. 다만, 그 언젠가는 지금이 아닌 최소한 3∼4년 후, 내가 하버드 박사학위를 받고, 아버지의 역사를 담은 책을 출간한 이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좌절 속으로 몰아넣은 시대생활이 그 언젠가를 바로 지금으로 앞당겨 놓았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지난 반세기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는지를 알았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얻어진 삶의 철학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만든 올가미에 자신들을 속박해 왔다. 나는 그러한 올가미에 굴복하지 않는 참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수많은 나날을 희망을 찾아 헤맸고, 불가능으로 보이는 벽에 부딪혀 희망을 잃기도 했으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영웅화시키기도 했고 나 자신에게 위대한 사명을 안겨주기도 했다.
     나는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불가능으로 보이는 벽이 내가 열어야 할 문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내 삶을 보면서 딸 성아가 자랐다. TV와 잡지, 그리고 신문에 소개된 우리 모녀의 삶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누구나 대할 수 있었던 우리 모녀의 이야기에서 자기의 삶에 도움이 될 희망과 용기를 얻은 것은 그들 각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꿈을 보는 자기만의 눈이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면 희망과 행복의 재료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꿈과 행복이 결정된다고 나는 믿는다. 선택은 모두의 손에 주어져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을 만나보고 싶다. 외롭게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 만나고 모여 강을 이루듯이 올바른 인간의 역사를 향하는 길목에서 뜨겁게 만나 손잡고 싶다."



     다. 자랑스런 딸 성아
     20년의 성공적인 미 육군 생활 끝에 소령으로 전역, 하버드의 석사학위 수여와 박사에의 도전, 한국어 외에도 능통한 영어와 일본어. 나는 편견을 비웃어줄 수 있는 자리로 자신을 끌어올려 놓았다. 조그마한 LA에서나마 나는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남녀평등이 보장되는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이룸으로써 한국 사회의 폐단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의 편견이 어리석음을 증명한 것은 그 뿐이 아니다. 나는 한국사회가 무시하는 평범한 ''아줌마''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당한 사회의 리더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만 28살의 ''아이 엄마''로서 미 육군에 도전해 탁월한 실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하버드의 석사학위를 받았고, 50이 넘은 나이에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딸 성아 역시 한국사회의 편견을 지적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한국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이혼녀,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한국의 편견은 내 아이들과 같은 이혼녀의 자녀들은 ''문제아''가 되리라고 쉽게 단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뒤엎고 딸은 한국의 부모는 물론 일본과 미국의 많은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로 자랐다.
     하버드대 4학년인 딸은 23살에 이미 한국말, 영어, 일본어 3개 국어에 능통한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엔 홍일점 야구선수, 장래 비즈니스 리더협회 회장, 그리고 학교신문 편집장에 전교 학생회장, 졸업 땐 250만 美 고교 졸업생 중 141명에 뽑혀 미국 대통령상도 탔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착한 마음씨도 가졌다. 또한, 성아는 일본고등학교 1년을 제외하고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공립학교에서만 공부를 했다. 다시 말해서,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아니라도 그 아이와 같은 성공의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가. 유년의 기억, 경상도와 충북 제천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도의 조그만 어촌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몇 개월 전에 어머니가 굉장히 편찮으셨다고 한다. 친할머니가 오셔서 집안 살림을 맡아 주셨는데, 엿 공장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바빴다. 11월 10일날 태어났는데, 나를 제일 먼저 받아주신 분이 바로 친할머니였다. 내가 태어나니까 친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이까짓 쓸데없는 가시나 하나 낳으려고 온 식구가 그렇게 고생했나''였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그 갓난아이가 너무나 미워서 핏덩어리와 물로 끈적끈적한 아이를 낡은 포대기에 싸서 윗목으로 쓱 밀어 버리셨다고 한다. 3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씻어주는 사람이 없자, 어머니가 참다 못해서 편찮은 몸으로 일어나서 나를 씻어 주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미 굳어서 살이라든가 머리 전부다 딱딱한 돌덩어리로 변해 버렸단다. 울어도 완전히 쭈굴쭈굴해져 가지고 정말 노인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나는 굉장히 멍텅구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부산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반에서 꼴지였다. 얼마나 어리숙한 지,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학년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걸 기억한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아침에 학교를 가보면 오후반이래서 다시 집에 갔다가 또 다시 가야 했고, 어떤 때는 오후반인 줄 알고 학교에 가보니까 다 가고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학교를 갔는데, 결석도 제일 많이 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바보 같아 보이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너무 괄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 당시 지금의 나를 상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자원이다.

     충청북도 제천에서 살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서 중학교를 그곳에서 마쳤다. 제천은 정말 추운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인생을 배웠다. 나에게 있어서 제천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 옛날의 제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제천은 너무나 중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제천은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제천은 나에게 고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 고통이 있었기에 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필코 성공하리라 결심을 했다.

     제천에 처음 갔을 때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아버지는 철도청 말단 공무원이셨는데, 월급이 우리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적었다. 그래서 다른 가정들이 그렇듯이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나섰다. 할 수 있었던 것 모두 다 했다. 술장사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천이 추워서 싫은데, 엄마가 술장사를 한다는 사실은 어린 소녀에겐 대단한 열등의식을 심어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5학년 때까지는 그나마 언니가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집안 일을 다 맡아 하면서 엄마를 보좌했었다. 그런데 언니가 6학년 때 홀연히 시집을 가고 말았다. 우리 집은 아들은 넷인데, 딸은 나와 언니뿐이었다. 이제는 내가 일곱 식구의 살림을 다 맡아서 해야 했다.

     그 때 눈뜨기 시작한 것이 바로 ''차별에 대한 반항심''이었다. 자식은 모두 다섯인데 왜 내가 해야 되는지, 나도 학생이고 나도 가서 공부를 해야되는데 왜 오빠나 남동생들은 일을 안 해도 되고 나는 살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되는지, 도대체 이유가 뭔지 물었다. 대답은 "니는 가시나 아이가?"였다. 가시나니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왜 가시나는 해야 됩니까? 내가 가시나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나는 가시나이기 때문에 그런 살림을 다 맡아서 해야 하고, 공부하는 데도 뒷전으로 밀려나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그 반항심!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반항심을 갖고 있다. 반항심 있는 사람들이 없는 곳은 발전도 없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굴복하고, 그냥 사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침체되기 마련이다. 반항심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때 당시는 그렇게까지 원대한 뜻으로 반항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나 혼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고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상상을 했다. 상상력! 지금도 나는 우리 인간이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모든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그 도움이 될 만한 재료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누가 자신의 꿈과 희망에 가까이 갈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나는 그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고, 일어나면 나는 부잣집 딸로서 따끈따끈한 아랫목에서 뒹굴면서 맛있는 찐 계란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마 나의 현실일 거다. 이것도 분명 꿈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위로를 했고, 그리고 나 스스로를 영웅화시켰다. ''나 자신에게 너는 무엇인가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지금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나. 손금을 읽어주시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아이들은 참 천진난만하다. 그 아이들에게 해 주는 한마디의 말, 그 말에 의해서 그 아이의 장래가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이란 굉장히 신중히 생각해서 해야 한다. 5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시험시간이면 책상 사이를 지나가다가 종종 아이들의 손금을 봐 주셨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내 손금을 보시고는 깜짝 놀래셨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바깥에 나가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내 손금을 보여주시면서 ''이 아이의 손에는 성공선이 있어요. 이 아이는 나중에 크게 될 앱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술집의 어린 딸, 열등의식에 쌓여 어둡게 살아가던 소녀에게 그 말씀은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정말 훌륭하게 될 사람이라면, 지금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매달릴 곳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공부, 공부를 하자. 공부는 아마 나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렇게 선택을 했다. 그리고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참 재미있었다.
     나중에 제천을 벗어나기 위해서 서울로 가려고 결심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선생님들께서 총동원되어서 ''얘는 공부를 굉장히 잘 한다. 나중에 뭔가 훌륭한 일을 할 것이다. 믿어보라. 서울로 보내라.''고 설득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서울 풍문여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은 계속되었다. 학비와 양식은 보내 주셨지만, 나에게는 항상 용돈이 없었다. 학용품을 살 돈이 없어서 잡지를 팔고, 가정교사를 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다. 암행어사가 꿈이었던 소녀
     나는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강한 암행어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암행어사가 되어서 이 사회의 나쁜 폐단을 물리치고, 그런 나쁜 폐단을 활용해서 자기 사리사욕만 채우는 사람들에게 대적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폐단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는 암행어사가 되고 싶었다. 그게 나의 꿈이었다.
     그리고 암행어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공을 해야 한다. 그리고 크게 성공을 해서 이런 사회의 폐단을 물리치는데 앞장서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실력을 쌓아야 성공을 하기 때문에 참 신이 났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꿈이 깨졌다.
     가난해서 대학은 갈 수 없었고, 취직을 해야 했다. 사촌언니가 알려준 가발공장에서 먼지 속에 파묻혀 나무 덩어리를 붙들어 안고 거기에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작업을 했다. 그 때 내 심정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른다. 이것이 운명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싫어서 열심히 안 했다. 열심히 안 하니까 당연히 돈도 없었다. 가난했다. 밥도 많이 굶었다.
     주변에서 나한테 밥을 사 주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 사람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이 고작이었는데도, 가족을 부양하고 부모들께 용돈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먹여 살릴 가족조차 없는데도 내 입에 풀칠 하나도 못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문득 ''나는 이 세상에 뭔가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것은 잠시 지나가는 과정이다. 이 것은 나를 훌륭하게 튼튼하게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주어진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도와주는 직공들, 웨이트리스들, 상인들, 나는 그 사람들을 언젠가 구하기 위해서 성공하고 나서 돌아오리라''고 다짐을 하게 됐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한테는 그것이 큰 힘이 됐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찾아 골프장에 가서 웨이트리스를 했고, 경리사원을 하고, 그러면서도 남들 하는 건 다했다. 연예도 굉장히 열심히 사랑했다.


     라. 첫 번째 결혼의 실패
     언젠가 싸인회에서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남녀의 사랑이 한참 뜨거울 때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보다 강하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나는 실연을 당하고 말았다. 항상 나는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었는데, 실연의 상처는 나에게 자살의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로 너무나도 큰 고통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황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나의 눈에 조그만 신문광고가 눈에 띄었다. 미국에서 식모를 구한다는 직업소개소의 광고였다. 이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나의 도미행을 만류했다. 영어도 할 줄 모르는 20살의 아가씨가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틀림없이 미국에서 창녀로 팔아먹으려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사람이었다. ''이 길이 있는데, 좋다! 창녀가 되어도 좋고 팔려가도 좋다. 이게 속임수라도 좋다. 나는 이미 죽음을 결심했던 사람이다. 해 보자! 한 번 가서 해보고 안 되면 그 때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항상 가지고 있는 나의 최강의 무기다. 나는 늘 나와 함께 행동한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 갔다. 처음 1년 반은 학교를 안 다녔다. 그리고 1년동안은 웨이트리스 일을 했다. 한국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영어학교를 나가고, 1년 반이 지나 정식대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그 당시 낮에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한 달에 천불을 벌었다. 대단한 수입이었다. 나는 부자 유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유학생들한테 밥도 사 주고, 필요할 때는 용돈도 그냥 주면서 신나는 삶을 살았다. 빚도 다 갚고,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용돈도 보내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TV도 샀다. 미국에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꿈과 희망에 넘쳐 생활을 한다는 건 굉장히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력은 너무도 신비로워서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다 한국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또다시 나의 본래의 꿈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는데, 남존여비사상에 젖어있던 그 사람은 ''여자는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일년에 두세 번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절대적인 평등주의자였다. 남편의 폭행을 한번두번 당하게 되자 비로소 사랑의 베일을 걷어버릴 수 있었다.
     혹자는 나에게 너의 치부를 드러내는 말을 하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 그러나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도 아니다. 인기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많이 노력해 왔고, 지금도 혼자 노력할 수 있다. 먹고 살 돈도 있다. 인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점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김희로 씨는 차별과 억울한 폭력을 호소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야쿠자 두사람을 죽였다. 그 대가로 30년을 넘게 감옥에 생활했다. 일본인이 한국인을 때리고 험하게 다루는 것과 나의 남편이 부인을 두들겨 패고 술을 마시고 아이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

     나의 생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상의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의무감에 차 있던 내 모습이 참으로 우스워 보였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하고 선택한 곳이었고,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려운 벽에 부딪히면 ''그 벽은 내가 열어야 할 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나는 좀더 강한 인간이 되어 더 큰 희망을, 더 큰 꿈을 성취할 수도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마. 군에 입대한 29살의 이혼녀
     29살의 나이에, 더군다나 불과 한달 전에 아이를 유산하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군에 입대해서 18, 19살 젊은이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윗몸 일으키기 한번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내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일어서야 한다! 가야 한다! 내가 안 가면 누가 그 사람들을 구해줄 것인가?''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었고, 필요할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 실패는 어쩌면 더 큰 성취를 위한 위로인지도 모른다. 그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아서 더 크게, 더 훌륭하게, 더 높게, 더 넓게 뛰어라. 그 때는 그 실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해서 장교가 되었고, 한국에 와서는 중대장을 했다.

     나의 중대에는 약 200명의 중대원이 있었는데, 155명이 한국남자들이었다. 좀 나이가 드신 중대대장이 굉장히 걱정을 했었다.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한국남자들이 한국여자의 명령을 들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남자들 그렇게 무시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성취욕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성공하고 싶을 것입니다. 자기 성공을 위해서는 저를 거쳐가야 합니다. 저는 미군 대위 중대장입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 사람들의 진급과 월급, 모든 것이 저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봉건사상에 젖어 나를 나쁜 태도로 대하고, 그래서 자기 일생을 망칠 바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155명의 남자분들은 다른 미군 중대원들보다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나는 물론 그 분들에게 친절하고 열성적으로 대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영어를 몰라서 미군들에게 멸시를 받던 것들을 모두 제거를 해주고 열심히 하니까, 그 사람들도 내가 성공하도록 목숨을 바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주었다. 대성공이었다.

     지역 전문가를 선발할 때도 그랬다. 나는 동북아 전문가를 신청했는데, 불합격통지가 왔다. 한국은 나를 굉장히 강하게 키웠다. 차별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미국에는 법이 있고, 호소를 하면 관심을 기울인다. 곧장 달려가서 담당자에게 불합격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담당자를 설득시켜 시험을 보게 되었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바. 동양인 최초의 하버드 모녀 대학생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다녔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졸업장은 대단한 힘이다. 사람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의 실력을 쌓아야 했고, 나를 훌륭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하버드에 신청을 했다. 하버드는 훌륭한 학교다. 그들은 삶의 지식, 살아있는 교훈, 살아있는 교육을 원한다. 또한, 삶의 터전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하고 거기서 배운 실력으로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학문을 가르칠 사람을 뽑는다.

     나는 한국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고, 차별 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가르칠 수 있었다. 미군 여성장교로서는 아마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군여성, 미군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었다. 하버드가 좋아했다. 학비가 비쌌지만, 군대에서 다 지원해줬다. 나는 가난한 초등학생, 가난한 중학생으로부터 지금은 부유한 대학생, 아주 부자 대학원생으로 하버드를 다니고 있다.

     한국이 나에게 가르친 게 또하나 있다.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다. 내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나의 성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그 성공과 그 직업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마저도 희생을 해가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한테 가르쳤다.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주말에 골프를 36홀씩 쳤다. 일본사람들과 거래하는 데는 일본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하는지 그것을 배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배우지도 않고 속단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서는 골프장이나 가라오케 같은 곳에서 많은 비즈니스가 결정된다. 나는 그런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일본사람들이 그들의 출세를 위해서 나를 굉장히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꿈을 보는 자기만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누가 자기의 꿈과 희망에 가까이 갈 수 있는가가 결정되는 법이다.
     그 당시 일본에서 4년 반 근무하는 동안 20년간의 군대 생활이 채워졌다. 중령진급도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기로에 섰다. 하버드 박사 학위는 언젠가 돌아와서 해야 했다. 그것은 10년의 기한이 있다. ''90년부터 시작된 하버드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바로 가서 끝내든지 아니면 하버드를 포기해야 했다. 군대를 포기하느냐 하버드를 포기하느냐? 심각한 고민 끝에 나는 하버드를 택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한 나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돈보다는 공부를 하자! 나와의 약속,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내가 암행어사가 되고자 했던 꿈! 그리고 그 꿈은 하버드를 다니면서 더욱 커졌다. 나는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어설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펜이 검보다 강하다. 육군 중령이나 대령보다는 하버드의 박사로서 훌륭한 글을 써서 세계를 감동시키자. 그렇게 해서 군대를 떠나고 하버드를 다시 오게 되었는데, 하버드 오길 얼마나 잘 했는지를 가고 나서 알았다. 하버드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석사학위 때도 가르쳤지만, 나는 하버드 아이들에게 멋진 반항아가 되라고 가르쳤다. 그 아이들에게 인간이 만든 범주, 제도 그 것은 얼마 전에 혹은 오래 전에 그 시대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바로 고쳐 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16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은 아니다. 20년이 되어도 좋다. 살아있는 공부를 해라. 현실을 배워라. 그리고 학문과 같이 합쳐서 강한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먼 훗날 한 20년 후 16년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한 사람과 살아있는 지식과 학문을 같이 배워서 겸비해서 좀 늦긴 했더라도 그 때 출발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누가 더 크게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인지? 그 때 견주어 보아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바뀌었다.

     그 아이들은 큰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하버드의 학생들 중에 미래의 루즈벨트, 케네디가 없으라는 법이 없다.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세계를 바꾼다. 그 뿐만 아니라 미래를 바꾸고, 21세기를 바꾼다. 나에게는 딸이 있다. 우리 모녀는 하버드대학생이다. 하버드역사상 두 번째로 도서관에서 나란히 공부하는 모녀 대학생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백인 모녀가 다녔는데, 동양여자로서는 우리가 최초였다. 덕분에 우리 모녀는 하버드에서 유명해졌고, 하버드 Korea News Letter와도 인터뷰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이다. 바로 그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한국에 알려지고, 방송에 나오고, 책을 쓰게 되고, 여러분을 만나게 됐다. 운명은 참 신기한 것이다. 물론 창조를 해나가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좌절도 많다. 그 많은 좌절을 헤치고 자신을 일으키면서 나아간 것은 바로 나의 상상력이었고, 그 상상력이 어느새 자기의 믿음이 되었다. 내가 나를 믿으니 사회도 나를 믿어주었다.



    5. 국제화시대, 한국사회의 문제점

     많은 한국인들이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우리 모녀의 성취가 과연 한국에서도 가능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내가 그대로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 이만큼 인정받는 위치로 나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마도 불가능했을 거라고 대답하는 내가 서글프다. 이 모든 성취가 미국의 배려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나의 성취가 왜 미국에서는 가능한 지 다시 한번 미국과 한국의 제도를 검토하고 비교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희망 없이 시들어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편견과 폐습으로 인해 아까운 자원이 빛도 못보고 시들어 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더욱이 인재등용에 있어서 올바른 경쟁이 없이 어느 한쪽만을 보호한다면 진정으로 실력 있는 사람을 한국의 대표로 뽑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온 국민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일꾼을 키우는 결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곧 치열하고 비정한 세계의 경쟁 속에서도 한국을 지킬 수 있는 국력이 된다.
     국제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과 인간 관계도 굉장히 경쟁이 치열하고 잔인할 수 있는데, 국제관계가 더욱 잔인하고 비정하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나라와 경쟁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기 나라 국민들을 위해서 일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자존심이나 편견을 접을 수 있다. 동시에 언제든지 이중인격자도 될 수 있고,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내 나라를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실례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타이완과 손을 잡았다. 냉전시대였으며 중국과 소련이 적이었다. 닉슨 시대, 베트남전이 끝나면서 중국과 손을 잡았다. 미국은 타이완을 버렸고 한국도 같이 따라갔다. 리더인 미국과 거래하기 위해서 일본도 마찬가지로 따라갔다. 유엔에서까지 타이완을 배척하고 중국이 가입했다. 냉전은 끝났다. 냉전시대에는 그래도 조그만 나라들이나 소수민족들이 큰 리더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머리만 좋으면 그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지금 현재는 어떤가? 미국이 최강국 리더라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미래를 모르듯이 미국이 언제까지 한국의 우방으로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북이 있다. 말썽부리고 있다. 미사일로 일본을 위협하고,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이 재무장을 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재무장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북은 충분히 그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이북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교수님은 한국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강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리 남자에게 우선권을 준다해도 결국 정말 강한 사람은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사실이다. 외국에 나가봐도 그렇다. 자식들도 험하게 키운 자식들이 튼튼하다. 그러나 ''네가 최고다''하며 키운 자식들은 대개 약하다. 남존여비사상에 입각해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들은 약하고, 역자들은 강해지는 것이다. 남자들 중에서도 배경이 있거나 부유한 집단의 자식들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런 남자들은 오히려 가난한 집안의 끈 없는 집안의 자식보다 약하다. 한국 내에서의 경쟁에서는 보호해 줄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버틸 수 있지만, 문제는 국제경쟁이다. 세계는 점점 국제화되어가고 좁아져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 많은 국민들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 한국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던 나와 같은 여자들에게도 기회를 준다. 그리고 실력이 있고, 의욕이 있고, 하려고 하는 자들을 선출해서 나라를 대표하게 한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가진 것은 인력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국은 참 조그맣다. 한국을 대표해서 그 강자들과 겨루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약자들 아닌가? 그리고 그 국제 경쟁에서 그 사람들은 한국을 경제적 경쟁이든, 정치적인 경쟁이든, 군사적인 경쟁이든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본다. 봐주지 않는다. 심각히 생각해 볼 문제다.

     결론적으로 남존여비나 ''줄''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우선적인 기회가 주어지는 식의 잘못된 폐단은 한국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불리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오늘의 한국을 지키고 내일의 주인들인 우리의 후손들이 떳떳하게 설 땅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도 온 국민이 단합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온 국민이 진정한 실력과 힘찬 의욕을 기를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옳지 못한 올가미는 인간 스스로가 풀어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음은 책에 나온 글 중 일부이다.

    "인생 50이면 황혼으로 접어드는 길인데 이제 박사는 해서 뭐하니? 그만 애쓰고 여생을 즐겨도 되지 않니? 내가 눈에 핏발을 쓰며 공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나는 지금 내 자서전의 마지막장을 쓰고 있는 거야. 그랬다. 나도 여생을 편하게 즐기고 살고 싶다는 충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액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연금과 그 동안 저축해둔 돈이면 여생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내겐 지난 50년 동안 다져온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 꿈을 잃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삶을 통해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지만 꿈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다보면 길이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작으나마 분명하게 존재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나 하나의 힘은 미약할 지 모른다. 아니 분명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내 앞의 누군가가 그랬고, 또 그 앞의 누군가가 그랬듯이 외롭게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 서로 만나고 모여 물길을 이루고,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지 않는가?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지금 세상이 조선시대보다는 차별이 줄었다면 그건 누군가 힘겹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한 대가라고 믿는다. 역사는 강한 자들만을 위해서 흘러서는 안된다. 역사는 약한 자들을 위해서도 흘러야 한다. 그 역사의 길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내 마지막 희망이다."

    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web] 개발관련 사이트 old version

    life] 정보의 가치

    -- 가치를 안다는 것 --

     일억 짜리 프로그램이 담겨있는 CD와
    십만원 짜리 MP3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MP3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결국 정보란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빛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정보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말해준다.

    일억 짜리 시디를 불법 복제해서 퍼뜨려버리면 그것은 순식간에 공시디 한장값이 되어 버린다.

    삼성이 참 크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사외 블로그는 인연을 끊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서 먹고 살고 있는데

    내가 회사에서 아는 자그마한 것이라도 어리숙한 판단에 정보를 가치없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 모호한 경계 --

     단, 재미있는 것은 오픈 소스를 좋아하면서, 정보, 지식, 돈, 공개, 비밀의 모호한 경계점을 보고 있다.

    내가 아는 종합기술원에 있는 한 선배는 오픈 소스로 얻은 소스를 자기 소스로 가공해서 비공개로 만들어 버린다.

    GPL, GPL해도 비공개된 소스는 볼수가 없다. 물론, 공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는 것이 좀 불만족스러웠다. 아니 그런 평가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피곤하게 하는 것이 짜증나서

    까발려 놓고 반격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래야 자기 위치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문제가 있다. 그렇게 지식의 가치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열심히 얻은 지식과 정보를

    0로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일등의 가치 --

     마소가 오픈 소스 연구를 지원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리눅스 광신도로 있을 때 M$하면서 맹목적으로

    싫어했지만.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알아주는 행동에 1등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 인텔과

    AMD의 디벨로퍼 지원의 비교를 겪고나서도 1등의 가치를 알았지만.


    R&D KMS를 보다보면 연구소 사람들이 참 많다. 물론, 연구가 본래 목적인 연구소이긴 하지만 동기나 선배들이 삼성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슉슉 정보를 받고 많은 정보를 정리하면서 생각한 가치관인데.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은 것 같다. 네임벨류와 사업부에 비해서

    보편적으로 나은 업무강도 때문에. 만약 두리뭉실한 이론들이 구현이 어렵다다해도, 연구소는 특급 코더도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돈으로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마소가 닷넷 프레임워크 3.0 이후버전에 들어간 WPF, WF, WCF, CS, Silver light ...들들이 왜 초기 버전부터 거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냈을까 중소기업에서 샀기 때문이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

    내가 정부라면 어떻게 할까? 예전에는 기업을 나누어 버리거나 세금을 때려버리거나 하면 되겠지만. 잘나가는 회사를 왜 궂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있을까?


    부익부 빈익빈도 상대적인 개념. 부가 계속 높아지니까 원래 가만있던 빈은 더욱 빈곤하게 보이는 착시 효과이다.

    다만 진정한 엔지니어의 실력과 마인드는 대부분은 빈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never mind... or whatever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사람들. 그것이 즐거움일 뿐인 사람들이 참 많다.

    간단한 생각이었다. 굳이 말 안해도 되는

    life] 김태원 아이가... 자폐증

     실시간 검색어가 갑자기 올라와서 보니...

    김태원 아이가 자폐증이라는 내용이었다.

    가슴 시린 노래들이 그냥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의 아픔을 딛고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하는 마음은

    진정 자기를 위해서 산다고 해서는 나올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만난 박완규씨랑 다시 부활의 신화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꽉 찬 사람들끼리 전설로 남았으면 한다.

    2011년 3월 30일 수요일

    guitar] 반말송

    비틀즈의 Let it be 가 더 어렵구요


    반말송은 제가 악보를 보니꽤싶더라구요. 혼자서독학으로도충분히할수있으십니다.


    반말송 코드


    G - D - Em - D (도입부)


    G - D - Dm - E7 - Am7- Am - C - D (- Dsus4) 솔로부분


    G - D - Em - D (-G) - [ C- D -Bm7 - Em ] - C - D - [G]후렴
    1박자씩엔딩추가


    주법은 오른손 커팅주법입니다 ( V : 업  ∩ : 다운)
    ∩V∩(커팅) V V∩(커팅)V


    출처 : limsy456@naver.com

    android] 개발자 등록 후 유료 앱을 못 올린다는...

    market.android.com에서 개발자 등록한지 한달 정도 된 듯한 느낌...

    슬슬 앱이나 올려볼까 하고 보던중...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미국만 유료앱 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헐~

    모냐... 그럼 이 마켓이랑 오즈 마켓이랑 다른거였어?

    life] 플루토늄도 나온 마당에...

    어제 뉴스를 보니 한국에도 요오드랑 세슘이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그 뉴스를 보자마자 지마켓에서 2L 물을 480개 주문했다. 한 주 특가로 9만원 할인 받고 ㅋㅋ

    왜냐면 한국에 안온다고 뉴스를 봤었는데 말이 달라서이다.

    밤에 집에 가서 보니

    소량이라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기사가 나왔고.

    원자력 기술원장의 임기가 다 되었다는 기사도 보았다.

    생각해보라. 다른 나라에 수입되는 일본 어폐류에서 요오드가 나와서 다 폐기 처분 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우리 나라는 바로 옆인데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가 있을까?

    차라리 위험하니 사재기 좀 하라고 했으면, 방사능 오기전에 관련 산업들이 발전해서 오염

    되기 전의 물들을 더 많이 확보하지 않았을까?

    오버 일수도 있지만.

    일단 물은 확보하자.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펀글] "해커"의 개발자로의 삶과 전망

    "해커" 개발자로의 삶과 전망
        오정욱(mat@panicsecurity.org)    시큐아이닷컴 과장 

    1. Intro


            제가 개발자로서의 생활을 한지도 벌써 7년이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프트웨어 개발은 어려운 분야이고, 뭔가 확실하게 개념이 잡기 힘든 분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생물학 전공이었지만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학교 전산실에서 광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에 빠져 지내면서 전공도 포기하고 개발자로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원래 인간의 말과 생각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컴퓨터는 처음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컴퓨터 자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본말 전도가 이뤄진 셈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컴퓨터 자체에 빠지게 되었고, 원래 "해커"의 의미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해커"라는 것은 실력에 대한 용어라기 보다는 "자세"에 관한 용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해커"란 컴퓨터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커"로서의 자세가 "실력"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커"가 실력에 관한 용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해커"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2. 방화벽의 개발


            방화벽의 개념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96년 여름에 국내 최초의 방화벽의 개발은 우연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보안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방화벽의 개발은 파트 타이머로서 일하게 되면서 시작 되었고, 처음에는 그저 작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처음 윈도우즈에서 NDIS를 사용해서 개발하려던 중에 유닉스, 특히 솔라리스로 운영체제를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나 코드 관리 등등에 대한 것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채 단 한명의 개발자만으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년 후에는 이미 몇군데 사이트에 제품이 팔려 나가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개발팀에는 메인 개발자 한명에 나머지 3-4명의 개발자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투입된 개발자들은 모두 학원을 갓 나온 개발자들로서 개발팀 전체의 파워는 그리 강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영업이 이뤄지고 제품 판매가 이뤄지면서 개발팀은 약한 파워에 오버로드가 걸리게 되었고, 결국 자체 분열이 일어 났습니다.    어쨌든 99 11월까지 회사에 다니면서 방화벽을 개발한 기억은 이후에 제대로 된 개발을 해 보고 싶다는 여운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3. 방황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면서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한 경험을 한 이후 개발이라는 것 자체가 진저리가 났지만 병역특례라는 상황 때문에 역시나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옮긴 곳이 인트라넷 개발 업체였습니다. 조금 큰 회사이었기에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개발 방법론 등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게 된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전문 분야인 보안과는 상관 없는 프로젝트였으므로 경력에는 그렇게 큰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전에 일했던 방화벽 업체의 사장은 수백억을 주식 판매 대금으로 챙기고 저기 머나먼 나라로 이민을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러한 소식은 저 같은 개발자들을 허탈하게 만듭니다. 

    4. 재도전


            프리랜서로 PC용 보안 제품 개발에 도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제대로 된 프로젝트 관리자를 만나지 못하여 실패하였습니다. 또한 Windows는 저의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기본 지식을 쌓는 데에만 시간을 모두 허비했습니다.     과연 언제나 되어서 제대로 된 멋진 프로젝트를 하게 될지 조바심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에 제대로 된 멋진 프로젝트 관리자가 숨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아이템과 좋은 관리자를 만나면 100% 성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5. 보안 컨설턴트


            프리랜서로 외주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업체에서 회사를 다운사이징하고 난 이후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곳이 바로 보안 컨설팅 업체였습니다. 이전에 해킹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보안 컨설턴트로서 모의 침투 분야에 종사하게 되었고, 2001년 말에 시작한 후 2002년 말에 회사를 한번 옮긴후 지금까지 계속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21세기를 보안 컨설팅과 함께 시작한 셈이네요.    보안 컨설턴트로서의 삶은 개발자의 삶보다는 덜 피곤했습니다. 일의 특성상 누군가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대상 서버에 대한 모의 침투를 시행한 후에 보고서를 써 내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힘도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장기 계획이라는 것이 아예 필요 없이 그때 그때에 수주가 된 사이트에 대한 점검만 행하면 되므로 관리라는 것이 거의 필요 없기도 했습니다.    처음 보안 컨설턴트가 되어서 모의 침투나 하자고 생각한 것은 그 동안 개발자로서 너무 힘들어서 그냥 조금 쉬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서서히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삶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6. 시대의 변화와 보안 기술들


            앞으로 몇년간 가장 활발하게 성장할 분야라고 하면 모바일 컴퓨팅이나 네트워킹, 그리고 홈네트워킹 등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이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하더군요. 저는 이러한 조류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미래에는 어디에서나 컴퓨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일어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화장실에 가서 샤워하고 볼일을 보거나, 식사를 하고 출퇴근 하는 일, 또한 운송 수단을 타는 일, 회사 건물에 들어 가서 출입 통제 시스템을 거쳐 사무실로 들어가고, 자신의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는 일 같은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 - CPU와 메모리를 가진 기계- 에 의존하고 간섭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서로 연결되어서 서로가 메시지를 보내야 할 필요성이 늘어 나는데 이 경우 네트워킹이 필수적입니다. 네트워킹은 유선을 통해서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무선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저는 PDA GPS, 네비게이션 소프트웨어 등을 구매해서 자동차에 카네비게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서 사용중입니다. PDA 동호회 사이트나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를 보면 많은 정보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스템을 장착하고 나면 골치 거리가 바로 선(wire)입니다. 이러한 선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실수로 선을 건드려서 기계를 떨어 뜨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선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아마 좋은 반응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한 GPS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더군요. GPS를 두는 위치가 자유로우니 위성 수신율도 높고, 선이 줄어 드니 좀 더 깨끗하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90년 중반쯤에 제가 랜을 처음 만들어 볼 때에는 두꺼운 동축 케이블을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전산실에서도 동축 케이블을 사용한 방이 있어서, 종종 랜이 다운 되기도 했고, 가끔 습도가 높은 날이면 정전기가 케이블을 따라 흘러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러한 동축 케이블이 자취를 감추고 얇은 UTP가 그 자리를 차지 하더군요. 아마 몇년 후면 이 UTP는 전산실에나 가야 볼수 있는 물건이 될지 모릅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노트북은 무선랜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제가 가진 노트북과 PDA는 모두 무선랜 내장형입니다.    이러한 무선이 주류를 이루게 될 미래에는 무선랜 보안은 큰 이슈입니다. 전파의 특성상 조건에 따라 무선랜 AP(Access Point)의 전파 도달 반경은 수 km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한 안테나등을 사용하여 출력이나 게인을 늘릴 수도 있으므로 물리적으로 무선네트워크로의 접근을 통제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내부에 금속 물질로 도배를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전파가 누출을 막을 수 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일반적으로 적용 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선랜 보안은 국가적으로도 큰 이슈에 속할 것입니다. 앞으로 주요 시설물들이 무선을 통해서 통제되고 거리를 걸으면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집안이나 사무실의 기기들을 조종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장 유행하고 있는 "크래킹"이라고 하면 단연 웹디페이싱입니다. 웹을 통한 공격은 근래에 지속으로 보안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웹이라는 시스템은 90년대 초반 CERN이라는 연구소에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스템이 공격의 가장 큰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웹의 기본적인 개념은 손쉬운 태깅을 통한 간단한 문서 작성과 하이퍼텍스트(hypertext)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웹브라우저나 플러그인 들이 발달하고, 웹어플리케이션 들이 대형화 되며서 웹어플리케이션들 자체에서 많은 보안 문제점들이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문제점이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이나 SQL 끼워넣기(Injection), 파일 업로드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보안 문제점은 예전의 정통파 해커들에게는 식은죽 먹기나 어린애 장난에 불과한 문제점들입니다. 예를 들어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이란 게시판이나 에러 메시지를 통해서 공격자가 특정 자바 스크립트 등을 공격대상의 웹브라우저의 DOM에서 실행 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격의 실체를 해커들의 대부들이 본다면 아마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웹브라우저에 "<script>alert(document.cookie)</script>"와 같은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는 해커는 예전의 어셈블리를 들여다 보면서 머리속에서 하나씩 명령을 실행해 보던 해커에 비해서 좀 더 신비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SQL 끼워넣기나 파일 업로드 등도 이해하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은 쉬운 보안 취약점입니다.    이러한 웹과 관련된 보안 취약점들은 일종의 인해전술을 사용해서 웹사이트 관리자들을 위협하게 됩니다. 웬만한 규모의 회사의 웹사이트는 적어도 수천개 이상의 어플리케이션 파일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러한 어플리케이션들 중에 상당수가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이나 SQL 끼워 넣기 등등에 노출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플리케이션을 찾아 내는 것(locating) 자체가 무척이나 고달픈 작업입니다. 모든 어플리케이션을 다 테스트 하는 것은 보통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의 침투를 하면서도 모든 웹어플리케이션을 테스트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에 눈에 띄는 놈들을 테스트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대부분의 경우 시스템에 침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단지 수십개의 어플리케이션만 테스트해서 시스템 내부로의 침투가 가능한 정도이니 나머지 어플리케이션에서도 버그들이 가득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러한 웹어플리케이션 보안을 높여줄 만한 보안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절실한 때입니다.    
            1.25 대란 이후 두드러진 것은 웜에 대해서 모두가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웜은 그냥 잡스러운 트래픽 정도로만 생각 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아주 위협적인 트래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드레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웜이 전세계의 네트워크를 단 몇분만에 마비 시켰습니다.    최근에도 윈도우즈 버그는 끊이 없이 리포팅 되고 있고, 크고 작은 웜들은 계속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바이러스 백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백신은 이미 웜이 감염 되었을 경우에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웜은 일단 감염 된 후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 시키면 다른 공격 대상을 물색하시 시작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네트워크에는 아직도 몇년 전의 님다 웜 같은 놈들이 죽지 않고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백신은 네트워킹이 활발하지 않던 90년대에나 유효했습니다. 주로 디스켓을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복사할 경우에 백신은 아주 효과적인 방책이었습니다. 백신이 파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악성 코드를 찾아 내는 시스템이므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네트워킹이 발달한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오류나 메일 등을 사용해 사용자에 대한 사회 공학을 통해 주로 웜이 전파 되고 있습니다. 전파의 매체가 네트워크이므로 당연히 네트워크에 기반한 방역 시스템이 존재하여야 합니다. 네트워크는 파일처럼 전체 내용을 마음대로 접근 가능한 매체가 아니라 일종의 스트림처럼 한번 흘러 가면 되잡을 수 없는 매체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적합한 악성 코드 매칭 알고리즘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고, 또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는 악성 코드를 식별할 수 있는 최적의 시그너쳐 데이타 베이스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방화벽이 단지 주소와 포트를 통한 접근 제어에 집중 했다면 이제는 트래픽의 내용에서도 악성 코드를 찾아서 트래픽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win7] 탐색기에서 현재 path로 시작하는 cmd 창 띄우기

     
    좀 아쉬운 것은 폴더 위에서 마우스 우측 클릭을 해야 한다는 것.

    이름 : 조인상
    제목 : 탐색기에서 현재 path로 시작하는 cmd 창 띄우기
    본문 : http://www.ischo.net/ -- 조인상 //시스템 엔지니어

    +++++++++++++++++++++++++++++++++++++++++++++++++++++++


    1. HKEY_LOCAL_MACHINE/Software/CLASSES/Directory/shell 키 아래에 dos prompt라는 키를 생성

    2. 우측창의 (기본값)에 원하는 cmd 라고 바로가기 이름을 만든다.

    3. dos prompt라는 키의 하위에 command라는 키를 하나 더 만들고
    (기본값)에 "cmd.exe /k"라고 적는다.

    linux] network 삽질 이야기.

    빨간색 부분 때문에 네트워크 카드가 안 잡혔으며,
    ifconfig로 수동으로 네트워크 카드 잡아도 ssh 로긴이 느렸으며(이건 아직도 왜 그런지 모름)
    bashrc랑 rc.local에 넣어놔도 네트워크 카드가 잡히지 않았다.
    잠시 보고 나간다는게... :wq 하는데
    :가 들어간 것을 모르고 저장했던게 실수였다. : 가 없으면 됨.

    찾기 힘든 환경 설정 구문은 똑같이 설정한 서버가 있으며 그마나 발견 확률이 높다.

     auto lo
    iface lo inet loopback

    # The primary network interface
    auto eth0:
    iface eth0 inet static
            address 10.89.xx.xx
            netmask 255.255.255.0
            network 10.89.xx.0
            broadcast 10.89.xx.255
            gateway 10.89.xx.1
            # dns-* options are implemented by the resolvconf package, if installed
            dns-nameservers 10.xx.128.99
    ~

    linux] 리눅스 시간 맞추기.

    리눅스 시간 맞추기.

     date -s '2010-11-22 09:54:00'
     hwclock -w
    표준시 서버들은 왜 접속이 안되는거얏.

    linux] vimrc

    ~/.vimrc


    set autoindent
    set cindent
    set smartindent
    set shiftwidth=4
    "set complete
    set background=light
    set backspace=eol,start,indent
    set history=1000
    "set tags+=/home/hajunho/tags가 있는 위치적으면 됨
    set tagbsearch
    map
    map :Tlist
    map :w :make :ccl :cw


    하다보니... 이게 제일 깔금한듯.

    그리고

    ctags -R 이랑 vim -t 콤보도 가끔은 grep 보다 좋지 않다.

    grep -isR -A 4 -B 4 "찾을문자열" *

    life] 개방형 폐쇄

     개방형 폐쇄

    결국 폐쇄적이라는 뜻이다. 개방형은 개방한 것 처럼 보인다는 뜻.

    회사 생활을 하다보니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점이 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개방형 폐쇄에서의 단점은 일을 즐기면서 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하루에도 20통 이상씩 날아오는 Open Source 개발팀들의 메일들. 누가 읽든 안읽든 메일을 날리고.

    자율적으로 그 메일을 수신하기 위해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는 행위.

    누군가가 모르면 아는 사람은 시간이 있는한 성실하던 성실하지 않던 답장.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답장을 보고 덧붙여 주기.

    push 하기 위해 세미나를 하는 (반도체 쪽이 더 심한 것 같지만) 곳과는 사뭇 다르긴 하다.

    물론, 개방형 폐쇄의 장점도 있다.

    수직적인 상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비록 나중에 고름이 터지더라도 당장은 괜찮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ubuntu] 한글 관련

    [Ubuntu] Putty에서 한글 깨짐 해결

    - putty 옵션에서 Window->Translation에서 Charater set을 UTF-8 로 바꾼다.

    - Ubuntu에서 EUC-KR 설치
    sudo apt-get install language-pack-ko language-pack-ko-base language-pack-gnome-ko language-pack-gnome-ko-base language-support-fonts-ko language-support-input-ko language-support-ko language-support-translations-ko

    sudo locale-gen ko_KR.EUC-KR

    linux] 명렁어 팁. 화면과 파일 출력 동시에

     ls -al * 2>&1 | tee ls.txt

    화면에도 나오고 파일로도 나오고.

    grep -iR abc * 2>&1 | tee grep.txt

    요렇게 ^^

    cp] cell phone info.

     http://www.l4digital.com/Tools/Conversion.aspx

    MEID -> ESN 으로 컨버팅 해주는 사이트 이다.

    언젠가는 링크가 끊기겠지만.

    life] 미군의 폭격




    아파치 헬기 일반인 폭격 동영상.

    난 미군 좋아한다. 우리나라 핵도 없는데 지켜주니까. 전쟁이 싫으니...

    그러나 조직이 크면 아닌 사람들도 존재한다. 삼성엔 없었으면 한다.

    출처 : http://vienna-jungdong.com/zbxe/pol_talk/15100/page/9



    일 정부 및 기업비리를 고발하는 사이트 위키릭스(www.wikileaks.org)는 2007년 7월 바그다드에서 미군이 공습작전을 수행할 당시 아파치 헬기에 촬영, 저장된 동영상을 내부고발자의 도움을 받아 공개했다. 당시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중에는 현지에서 고용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나미르 누르-엘딘(22) 씨와 그의 운전사가 포함돼 있었다. 문제의 동영상은 로이터통신의 끈질긴 공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거부해 왔던 것이다.



     
    17분 분량의 흑백 동영상에 찍힌 공격대상은 휴대전화를 하거나 카메라를 맨 채 여유 있게 걸어가는 이라크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포착한 미군 조종사들은 "AK47 소총을 들고 걸어가는 반군이 있다"며 기관포를 연발했고, "하하, 내가 맞췄다", "저기 죽어나자빠진 놈들 좀 봐" 등의 대화를 계속했다 부상자가 다리를 질질 끌며 힘겹게 움직이자 추가 공격 빌미를 찾으려는 듯 "어서 총을 잡아, 총만 잡으면 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몇 분 뒤 부상자를 돕기 위해 도착한 차량에도 수차례 발포했다. 차량 안에 타고 있다가 부상한 어린이 두 명이 긴급히 다른 차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고는 "전쟁터에 애들을 데려온 이라크인 잘못"이라고 내뱉는다.









    p4] 삽질의 전설

    8시간 이상 삽질했다.

    P4V에서 체크 아웃된 파일이 업데이트 안되는 바람에... 컴파일 에러가 계속 났다.
    한 두 파일이 아니라서... 알 수 없는 오류 잡는다고 열심히 잡았더니.

    결국은 서버랑 파일이 맞지 않는 문제였다. ㅠ.ㅠ

    워크 스페이스 날리고 다시 받으면 해당 파일은 받아 지지 않는다.

    Submit이랑 Revert Unchanged files를 이용하여 P4에 예약된 파일들을 찾고 조치를 취하자.

    아아~ 삽질해봤자 포크레인질 한방이다.

    c] make 분석.

    완벽히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make 에서 -d(디버그 옵션) 을 주고

    빌드 명령어 | grep ".mk" > msgOfBuild.txt

    하면 그나마 mk 파일들이 열리는 순서를 조금 볼 수 있다.

    화면 출력하면 후덜덜(ㅎㄷㄷ)하니 부디 리다이렉션은 로그파일로....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ubuntu] kscope install 깔기 설치 ...

    https://launchpad.net/ubuntu/+source/kscope/1.6.0-1/+buildjob/418014


    google에서

    kscope ubuntu amd64로 검색하면 몇 개가 나오네.

    최신 버젼은 없다 ㅠㅠ.

    android] No Launcher activity found

    <intent-filter>
                    <action android:name="android.intent.action.MAIN" />
                    <category android:name="android.intent.category.LAUNCHER" />
                </intent-filter>
    얘가 minifest의 activity 에서 빠져 있으면 액티비티를 차지 못한다. ㅋㅋ

    android] logcat 유니코드

    출저 : http://www.mail-archive.com/perl-win32-users@listserv.activestate.com/msg36722.html

    adb logcat 할 때 유니코드로 보는 법.

    cmd /u
    로 띄운다.

    chcp 65001 을 한다.

    유니코드가 대세.

    추가로 Log.e("HJH", "lkjwelfjwlefj");

    요릏게 심어두고

    adb logcat HJH:1 *:S

    로 하면 심은 로그만 나온다.

    편함 편합니다요.

    하우스 웨딩, 출처 : bestgood999@naver.com

    하우스웨딩









    백과사전식의 설명은 ' 50-100명정도의 하객과 함께 저택같은 소규모공간에서 진행되는 결혼식 형태 ' 를 말하지만  한국에서 많은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하우스웨딩을 말하는데 여러가지 기준이 포함됩니다. 이해를 돕고자 o,x방식으로 설명합니다.

    - 하객이 100명을 초과하면 안된다 (X)
    - 하객만 적다면 , 어디서 결혼식을 하던 하우스웨딩이다 (X)
    - 하우스웨딩 스타일이라고 광고하는 웨딩홀도 하우스웨딩이라고 생각한다 (X)
    -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하면 하우스웨딩이다 (X)
    - 돌잔치전문뷔페,한정식의 장소에서도 결혼식을 하면 하우스웨딩이라 할 수 있다 (X)

    하우스웨딩에 관련된 많은 부분들이  오해와 억지속에서  애매모호한 개념들로 나열됩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진정한 하우스웨딩이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에 업계담당자들은 ..
    한국에서 하우스웨딩을 하기에 정말 괜찮은 곳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형으로 답변을 한다는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너무 좁은 범위로 하우스웨딩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이런 결론을 내려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우스웨딩>
    : 우리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 , 특별한 구성 , 특별한 기획이 있는 결혼식.
      따라서 하루에도 1,2시간 단위로 다른 예식이 치뤄지고 있는 일반웨딩홀에서 하우스웨딩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서 하우스웨딩이라 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레스토랑 예식의 경우도 , 특별한 구성과 기획이 없다면 ...
     상업적인 부분에만 열중해서 하우스웨딩이라는 간판만 세운것은 아닌지 생각됩니다.

    하우스웨딩... 특별함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공간에서 차별적인 결혼식이라면
    하객이 400-500명이라도  하우스웨딩이라고 말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하객이 많다보면  파티같은 분위기 연출이 쉽지 않다 보니 ... 소규모가 된듯싶습니다.
    그래서 하우스웨딩을 하고싶은 신랑신부는 굳이  억지로 초대하지 않아도 될 손님과 함께 결혼식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동안 뿌렸던 부조금때문에, 남들 시선때문에 이사람 저사람 쑥쓰럽게 연락안해도
    됩니다. 정말 축하해줄 사람 , 정말 같이 이순간을 함께 해줄사람과 결혼식을 하는것입니다.

    따라서 생각보다 많은 신랑신부가 하우스웨딩을 생각해봐도 좋습니다.

    하객이 많다구요 ?  잘 생각해보세요 . 억지로 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가까운곳에서 해야한다구요 ?  잘 생각해보세요 . 편하자고 하는 결혼식이라면 열번도 할수 있습니다...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다구요 ?  조금만 더 신경쓰시면 충분히 하객과 신랑신부 모두 좋은 추억을 만듭니다..


    하우스웨딩비용

    하우스웨딩은 대부분의 결혼식보다 비싸다 ??
    아닙니다.

    결혼식비용은 크게 식대+부대비용+스드메(스튜디오본식촬영앨범,드레스턱시도,메이크업헤어)입니다
    스드메는 대부분 외부컨설팅을 통해 진행되기때문에 결혼식비용과는 별개라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식대와 부대비용이 결혼식비용입니다.

    서울지역 일반웨딩홀 식대는  2만원대 후반에서 최고 4만원대 중반까지 입니다.
    서울지역 호텔예식 식대는  3만원대 중반에서 최고 10만원대 중반까지 입니다.
    하우스웨딩의 평균식대는 3만원대 초반에서 최고 7만원대 후반까지 입니다.





    꽃장식을 포함한 부대비용에서 하우스웨딩이 저렴하지 않은 이유는..
    더 좋은 꽃과  더 스타일리시한  데코레이션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1시,12시,1시,2시,3시,4시,5시,6시.... 이런식으로 찍어내는 결혼식에서 쓰이는 꽃장식과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심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 그렇습니다.
    역으로  일반웨딩홀의 꽃장식이 질적양적으로 우수하지도 않으면서 비싼이유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하우스웨딩의 식대가  다른 일반 웨딩홀보다 조금 더 비싼...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1시간30분간격으로 진행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부분을 충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3시간/4시간 정도의 예식시간을 할당해준다는것은 그만큼 거의 우리만을 위해 전세(전체대관)를 내준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일반웨딩홀이 예식시간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하우스웨딩은  거창한것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해야 꼭 하우스웨딩인것도 아닙니다.
      결혼식을...진짜 결혼식답게  하는것이 하우스웨딩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 이런 마인드로 영업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 더불어 하우스웨딩  장소 몇군데를 추천드립니다

      저택 결혼식- 양평 ( 바오하우스 , 생각속의집 )
                          서울 ( 빌라드베일리 , 베일리하우스 , 헤라하우스)
                          레스토랑 결혼식 - 나인키친 , 아이모나디아
      선상 결혼식 - 오엔,프라디아,마리나제페

    bootcamp 지우기

    맥북 프로 레티나 터치바 diskutility 에서 bootcamp 파티션 삭제하면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바뀐다(APFS로 지정) 파틴션 아이콘 클릭하여 - 버튼을 이용하여 삭제하면 끝.